2023년 10월 23일(음력 9월9일)은 유교 전통명절 중양절입니다.유교경전 예기에는 국유황화(鞠有黃華:국화는 노란 꽃이 되고)로 언급.중양절 전후로는 오래동안 전국에서 국화를 즐기는 시기입니다.

2023년 10월 23일(음력 9월9일)은 유교 전통명절 중양절입니다.유교경전 예기에는 국유황화(鞠有黃華:국화는 노란 꽃이 되고)로 언급.중양절 전후로는 오래동안 전국에서 국화를 즐기는 시기입니다. 신라이후 국가의 중요 명절로 이어진 중양절. 조선시대에는 절제(節製)라 하여 유교명절 중양절에 과거시험을 보았습니다.중양절은 오제(五帝)중의 한분 신이시며, 가을의 하느님이신 소호(少?) 께서 다스리시는 가을의 큰 명절 중 하나입니다. 중양절이후 오랫동안 국화주, 국화전, 밤단자(밤떡)등을 즐겨 먹는다고 합니다.그리고 유자(柚子)를 잘게 썰어 석류알, 잣과 함께 꿀물에 타서 마시는 화채(花菜)도 절식(節食)으로 먹었습니다. 한로.상강 절기에는 추어탕도 많이 먹어온 한국 풍속입니다.  

 

[1]. 중양절(重陽節)에 대한 개요(槪要).

 
1]. 중국에서는 한나라 이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당송(唐宋) 대에는 추석보다 더 큰 명절로 지켜졌다고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절제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 성균관과 지방의 유생을 대상으로, 명절인 인일절(人日節)ㆍ상사절(上巳節)ㆍ칠석절(七夕節)ㆍ중양절(重陽節)에 실시한 과거.

 한국 세시 풍속사전에 의하면 이렇습니다. 중국 당나라에서는 중양절이 되면 나라에서 태학(太學)의 학생들에게 겨울옷을 하사하는 의식이 있었다. 중양절 무렵이 겨울을 준비하는 적절한 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중양절에는 국화주, 밤단자(밤떡)등을 즐겨 먹는다고 합니다.그리고 유자(柚子)를 잘게 썰어 석류알, 잣과 함께 꿀물에 타서 마시는 화채(花菜)’도 절식(節食)으로 먹었습니다. 

 
필자 주 1). 인일(人日): 음력 정월 초 이렛날. 표준국어대사전이 출처.초이렛날.

필자 주 2). 상사(上巳): 음력 삼월 초 사흗날. 표준국어대사전이 출처.사흗날.초사흗날.

필자 주 3). 칠석(七夕): 음력으로 칠월 초이렛날의 밤. 표준국어대사전이 출처.

필자 주 4). 중양(重陽): 세시 명절의 하나로 음력 9월 9일을 이르는 말. 이날 남자들은 시를 짓고 각 가정에서는 국화전을 만들어 먹고 놀았다. 표준국어대사전이 출처.


유교의 최고신이신 하느님(天)을 중심으로 계절을 주관하시는 신들이신 오제(五帝)께서 베푸시는 아름다운 명절(중양절)과 절기(상강)의 시기가 왔습니다. 중양절(重陽節)의 국화철, 상강(霜降)절기의 단풍철이 오랫동안 한국의 가을을 아름답게 수놓게 됩니다. 유교 명절이나 유교문화 24절기는 유교의 관습과 전통이므로, 24절기나 명절때, 절에가면 않됩니다. 종교적으로 볼 때, 불교는 하느님.창조주를 인정치 않고, 창조주 브라만을 내리깔고 덤비는 부처Monkey를 중시하며 절에서 예불하는게 불교의 본래 위치며, 조상제사도 거부해 온 무군무부(無君無父)의 금수입니다.



[2]. 유교 경전(儒敎經典) 예기(禮記)에 나타나는 음력(陰曆) 9월(月)의 국화(菊花).

 

季秋之月…. 
鞠有黃華… 

 

국유황화(鞠有黃華)

 

국화는 노란 꽃이 되고…

 

국은 菊과 통함. 오색 중 황은 중색(中色)으로서 귀하게 여기므로 특히 황화라고 했다.

 

. 출처:신역(新譯) 예기(禮記),역해자(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2003.10.30

 

1]. 중국에서 중양절의 유래. 한국은 신라이후 큰 명절. 

 

중양절은 중국에서는 한나라 이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당송(唐宋) 대에는 추석보다 더 큰 명절로 지켜졌다.
등고회(登高會)는 중양절의 중요한 행사인데 이날 우산(牛山)에 올라 눈물을 흘렸다는 제나라 경공(景公)에 대한 기록을 근거로 중국에서는 이미 전국시대부터 행해졌다고 주장한다. 또한 내려오는 전설에 동한(東漢) 때 앞날을 잘 맞추는 비장방(費長房)이라는 도인(道人)이 어느 날 학생인 항경[恒景, 桓景]에게 “자네 집은 9월 9일에 큰 난리를 만나게 될 터이니 집으로 돌아가 집사람들과 함께 수유(茱萸)를 담은 배낭을 메고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면 재난을 면할 수 있네.”라고 하였다. 항경이 이날 그가 시킨 대로 가족을 데리고 산에 올라갔다가 집에 돌아오자 집에서 키우는 가축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고 한다. 중양절에 수유 주머니를 차고 국화주를 마시며 높은 산에 올라가는 등고 풍속은 이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유 주머니를 차는 것은 나쁜 기운을 제거하기 위해서이고, 국화주를 마시는 것은 노화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기능적인 해석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이래로 군신들의 연례 모임이 이날 행해졌으며, 특히 고려 때는 국가적인 향연이 벌어지기도 했다.조선 세종 때에는 중삼 곧 3월 3일과 중구를 명절로 공인하고 중구를 무척 중요하게 여겨 늙은 대신들을 위한 잔치인 기로연(耆老宴)을 추석에서 중구로 옮겼으며, 또 중양절에 특별히 과거시험을 실시하여 이날을 기리기도 하였다.

 

. 출처: 중양절[重陽節] (한국세시풍속사전)

 

.필자 주 1). 음력(陰曆) 역법(曆法)으로 가을은 맹추지월(孟秋之月), 중추지월(仲秋之月), 계추지월(季秋之月)의 석달이 있는데, 季秋之月은 마지막 가을의 달로, 음력 9월을 말함.

 

. 필자 주 2). 之月의 용법과 관련하여, 예기에서는 음력 8월인 중추에 대해서는 仲秋之月로 쓰고 있는데, 예기 아닌 일반적 용법에서, 중추절이라 할때는 다음과 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a). 국립국어원의 국어사전

중추절 仲秋節

 

b). 오픈마인드 한자사전

중추절 仲秋節

 

c). 한국 민족문화대백과

 

가배·가위·한가위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한다.

 

d). 두산백과

 

중추절 [zhong qiu jie, 中秋?]

 

e). 다락원

 

중추절[中秋節]        

 

.출처:중추절[中秋節] (중국, 중국인 그리고 중국문화, 2011. 3. 3., 다락원)

 

f). 중국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중한사전

 

秋?

 

1. [명사]중추절. 추석.

…..    

 

. 출처:중국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중한사전       

   

f). 교학사 중한사전

 

八月?

1.[명사] 음력 8월 15일. 한가위. 추석. 중추절.

 

. 출처:교학사 중한사전 (박영종 저)                                   

 

2]. 필자의견

 

1. 학설이나 이론들이 일치하지 않을때는, 일반적으로 국가에서 발행하는 여러가지 교과서나, 기타의 검인정 교과서가 우선이 되겠습니다.(국사  편찬위의 국사, 다른 형태의 세계사, 국가의 公敎育인 삼강오륜 교육등 교과서 공교육이 우선). 그리고 용어에 관련하여서는 국립국어원의 국어사전이 우선되고, 한자사전 및 중국어사전등도 병행하여서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유교관련용어로는 유교 경전인 오경(五經)과 사서(四書)가 중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용어나 학설에 관한 견해로는 국가에서 관여하는 국사교과서나 대통령령에 의해 발행되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학설(삼국사기는 正史, 삼국유사는 전통적으로 野史의 관례도 반영하여야 할것)이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시야를 넓혀볼때는 세계사 교과서나 다른 교과서도 중요하게 반영하여야 할것입니다. 수천년 인류문화를 담는 학설이나 이론에 관하여는 중국이나 로마제국.교황청, 그리고 漢字나 라틴어가 언제든지 중요하며, 국가주권을 반영할때는 해당국가의 국내법을 우선적으로 하면서도 국제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2. 중양절(重陽節)이나 한로(寒露)나, 상강(霜降)이나 어디까지나 유교문화의 오랜 전통이니까, 유교를 모방하는 불교의 각종 유교명절(설날.추석, 입춘, 단오절,한식,칠월칠석, 중양절, 한로.상강,동지등의 유교전통 행사) 모방행사때, 유교의 여러 신(神)제사.조상제사등에 무의미하게 부근의 절에 찾아가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교는 어디까지나 인도지역 브라만교의 창조주에 대항해 일어난 현재의 네팔지역 출신 부처에서 비롯된 Monkey사상이니까, 절 안에서 부처에 불공이나 드리는게 제대로 된 의식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신[천생증민(天生蒸民)] 조물주이신 유교의 하느님(天)! 유교의 최고신은 하늘천(天, 태극과 연계되신 하늘 天), 하위신은 계절의 신, 해의 신, 달의 신, 별의 신, 우주 공간의 여러신, 산천의 신, 조상신등 많습니다. 악한 기운을 쫒아내는 유교명절 단오절의 창포(菖蒲)나 중양절의 수유(須臾)로 볼 때, 악령(惡靈)도 있습니다. 유교는 세계 4대 문명의 발원지중 하나인 황하문명의 시원유교(始原儒敎)부터 시작하여 중국 한(漢)나라란 강대국.문명국의 세계종교 유교(세계사적 견지에서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인 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서 세계종교로 성립되어 한자와 함께 유교 제사, 유교 명절, 24절기, 유교 교육기관, 여러가지 유교 교육, 한문성씨의 사용등 여러 요소들이 어울려 동아시아의 정신적 구심적 역할을 해옴)로 이어져 다른 종교들과 달리 시원유교(始原儒敎)의 신관(神觀)에서 큰 변화없이 하늘천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도 같이 모시는 다신교(多神敎)측면의 신앙을 유지해온 종교입니다. 4대문명에서 시원적(始原的) 출발을 한 종교들은 다음과 같이 다신교(多神敎)적 측면이 있었습니다. 

 

– 다 음 –

 

가. 메소포타미아 문명.

[ Mesopotamia civilization , -文明 ]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서 발생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발생지이다. 개방된 지리적 조건으로 수많은 민족의 이주와 정복, 이에 따른 지배자의 교체가 있었다. 지구라트라는 신전이 있었다. 왕 · 관료 · 전사가 지배 계층을 이루었으며, 평민과 노예가 존재하였다. 문화적으로는 함무라비 법전, 쐐기 문자, 태음력, 60진법, 현세적 성격의 종교 등의 문화적 특징을 지닌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가장 큰 정치 세력은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의 비교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의 비교 구분메소포타미아이집트공통점지형정치종교문화

전제적 신권 정치, 실용적 과학 기술 발달
개방적-이민족의 침입으로 왕조 흥망 거듭폐쇄적-통일 국가 유지, 정치 안정 지속
수메르 인→아카드 인→아무르 인 →혼란 계속고왕국→중왕국→힉소스 족의 지배→신왕국
현세적 다신교-점성술(천문학)내세적 다신교-미라, 피라미드, 사자의 서
쐐기(설형)문자, 태음력, 60진법, 아치, 지구라트상형 문자, 파피루스, 태양력, 10진법, 측량술, 외과 의학, 로제타 스톤

 

. 출처: 메소포타미아문명 [Mesopotamia civilization, -文明] (Basic 고교생을 위한 세계사 용어사전, 2002. 9. 25., 강상원).

 

나. 이집트문명.

 
[ Egypt 文明 ]

나일강 유역에서 형성된 문명으로,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이집트 왕조의 수립 뒤 알렉산더 대왕까지 이어진다. 폐쇄적 지형으로 오랫동안 통일을 유지하였고, 전제 군주인 파라오가 통치하였다. 사회는 파라오-신관 · 관료-서기 · 상인 · 공인-부자유 농민 · 노예의 피라미드 형태의 신분 구조를 보인다. 내세적 다신교를 섬겼으며, 상형 문자, 파피루스, 태양력, 측량술, 역학적 지식, 의학의 발달 등의 문화적 전통을 지녔다.

 

. 출처: 이집트 문명 [Egypt 文明] (Basic 고교생을 위한 세계사 용어사전, 2002. 9. 25., 강상원)

 

다. 인더스 문명.

대규모의 신전이나 묘는 없고, 곡물 창고나 대 목욕탕이 있다. 다신교 신앙과 신정 정치가 발달하였다. 

 

. 출처: 인더스 문명[Indus civilization, -文明] (Basic 고교생을 위한 세계사 용어사전, 2002.9.25, (주)신원문화사)  

 

a. 고대 인도의 브라만교.

 

브라만교

[ 婆羅門敎 ]

고대 인도에서 브라만 계급을 주축으로 성립된 인도의 민족 종교이다. 《베다》라는 성전을 근거로 하고 있지만, 체계가 뚜렷한 종교는 아니다. 인도 아리아 인이 B.C. 1500년경에 인도에 침입한 뒤 신봉한 민속 종교로, 넓게는 힌두교(인도교)에 속한다. 이 종교의 본질은 다신교이며, 《리그 베다》에서 발단하는 우주의 유일한 근본 원리의 탐구는 《우파니샤드》에서 그 정점에 이르렀다. 우주 유일의 근본 원리로서 브라만(범(梵))과 개인 존재의 본체인 아트만(아(我))이 상정되며, 결국 이 두 가지는 같은 것이라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사상을 형성하였다. 브라만교는 카스트 제도라는 엄격한 신분 제도에 바탕을 두었으며, 지나친 형식주의 때문에 비판받았다. 이러한 브라만교는 굽타 왕조 시대에 민간 신앙을 받아들여 당시 인도 전역에 교세를 떨쳤다.

 

. 출처: 브라만교 [婆羅門敎] (Basic 고교생을 위한 세계사 용어사전, 2002. 9. 25., 강상원)

 

b. 고대 인도 불교의 탄생 [ 佛敎 ]    

기원전 6세기경 인도 북부 부다가야에서 싯다르타에 의하여 창시된 종교로서, 전통적인 카스트 계급 사회에서 브라만 계급의 횡포를 반대하고 만민의 평등과 자비의 실천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 출처: 불교 [佛敎] (Basic 고교생을 위한 지리 용어사전, 2002. 2. 5., 이우평)

 

 

c. 부처의 탄생지는 현재의 네팔 영토.

 

네팔불교

분류

문학 > 불교설화
힌두교와 라마교가 혼재되어 있는 네팔은 불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성지 룸비니를 국경 안에 두고 있다.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는 19세기 이전까지 매몰된 채 덩굴과 잡초만 무성했었다. 1896년 고고학자 퓨라 박사가 아쇼카왕이 세운 석주를 찾아내고 이곳이 룸비니임을 확인했다. 룸비니는 1967년까지만 해도 황폐한 모습의 유적지였다. 당시 이곳을 방문했던 우탄트(전 유엔사무총장)는 룸비니의 재건을 호소, 세계인의 호응을 얻어 이곳을 개발했다. 탄생의 성지 룸비니가 있는 나라 네팔에 처음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확실치 않다. 네팔불교의 상징인 스와얌브나트 스투파(塔)가 건립된 것이 1세기경이므로 이때에 이미 불교가 전래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이 탑의 양식은 밀교의 영향을 받고 있어 네팔의 불교 전래시기는 훨씬 하대로 추정된다. 네팔은 인도와 인접해 있지만 티베트와도 접경을 이루고 있다.

한때 네팔은 티베트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때 라마교가 자연스럽게 네팔에 뿌리내리게 됐다. 물론 네팔은 불교를 티베트로부터 전수받은 것만은 아니다. 오늘의 네팔불교는 곧 라마교를 지칭한다. 사원은 모두 티베트승려에 의해 운영되는 라마사원들이다. 살아있는 부처님으로 추앙되는 달라이라마는 티베트가 중국에 의해 공산화되자 라마승들을 데리고 네팔로 옮겨 왔다. 근년에 와서 티베트난민과 승려 수가 늘어나자 사원도 새로 지었다. 네팔의 불교문화는 대체로 말라왕조(1200-1750) 후기에 완성된 것이다. 네팔벨리에는 엄격한 구분이 없는 힌두사원과 불교사원이 2천5백여개에 달한다. 네팔불교에 대한 예비지식이 없는 순례자들은 힌두의 신상을 관음보살상이라고 참배하기도 한다. 네팔의 불교는 티베트에서 온 라마승들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스와얌브나트 사원은 소년불교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학생은 2백여 명 정도다. 이들은 사원에서 합숙하면서 종교예절. 교리 외에 일반 중학과정을 배우고 있다.

 

. 출처: 네팔불교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 용어사전), 2012.)

 

 

3]. 여러 사전에 나타나는 중양절.

 

1.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나타나는 중양절(重陽節)

명사 민속 세시 명절의 하나로 음력 9월 9일을 이르는 말. 이날 남자들은 시를 짓고 각 가정에서는 국화전을 만들어 먹고 놀았다.
조선 시대에, 성균관과 지방의 유생을 대상으로, 명절인 인일절(人日節)ㆍ상사절(上巳節)ㆍ칠석절(七夕節)ㆍ중양절(重陽節)에 실시한 과거. 의정부, 육조 등의 당상관이 성균관에서 제술로써 인재를 뽑았다.
2.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에 나타나는 중양절(重陽節). 

정의
음력 9월 9일로 제비가 따뜻한 강남으로 돌아간다고 전해지는 세시풍속. 중구

내용
‘중구(重九)’라고도 한다. 중양은 양이 겹쳤다는 뜻이니 양수인 홀수가 겹친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도 다 중양이 될 수 있겠으나, 중양이라고 하면 중구를 가리킨다. 중구는 음양 철학적인 중일명절(重日名節)의 한 대표적인 명절이었다.

중국에서는 한대(漢代) 이래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상국(賞菊)·등고(登高)·시주(詩酒)로 즐겨 온 날이었다. 당송 대(唐宋代)에도 관리들의 휴가일로서 추석보다도 훨씬 성대한 명절이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신라시대부터 안압지의 임해전(臨海殿)이나 월상루(月上樓)에서 군신이 중구에 연례적으로 모여서 시가를 즐긴 듯하다.

고려시대에는 중구의 향연이 국가적으로 정해져 있는 규례이다. 내외신하들과 송나라·탐라(耽羅)·흑수(黑水)의 외객들까지 그 축하연에 참석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다시 세종 때에 중삼·중구를 명절로 공인하고, 성종 때에는 추석에 지내던 기로연(耆老宴 : 노인 잔치)도 중구로 바꾸어서 지내었다.

또한, 성균관유생들에게 시험을 보이던 절일제(節日製)도 인일(人日 : 1월 7일)·중삼·칠석·중구에 보였다. 여기에서 특히 추석에 지내던 기로연을 중구로 바꾸었다는 사례는 상징적이다. 그만큼 관(官)과 상층에서는 음양 철학적인 경향을 많이 띠었고, 그것은 보름명절[望日名節]보다 중일명절을 크게 쳤다는 것에서 선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일반농어민사회에서는 어디까지나 추석·백중(百中 : 7월 15일)·대보름(1월 15일) 등 보름명절이 훨씬 성대하였다. 더구나 중구 때는 벼수확과, 목화따기 및 콩·팥·조·수수·깨·고구마·감자에 무·배추 등 김장채소 거두기까지도 겹치는 농번기였으므로 명절로 즐길 겨를이 없는 때였다…

 

. 출처: 중양[重陽]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3. 두산백과에 나타나는 중양절(重陽節). 

 

중양절
[ 重陽節 ]

요약 음력 9월 9일을 이르는 말.

중구(重九)라고도 한다. 9는 원래 양수(陽數)이기 때문에 양수가 겹쳤다는 뜻으로 중양이라 한다. 중양절은 제비가 강남(江南)으로 간다고 전하며, 이 때쯤 되면 제비를 볼 수 없다. 이 날은 유자(柚子)를 잘게 썰어 석류알, 잣과 함께 꿀물에 타서 마시는데 이것을 “화채‘(花菜)’라 하며 시식(時食)으로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기도 한다. 또 이 날 서울의 선비들은 교외로 나가서 풍국(楓菊) 놀이를 하는데, 시인 ·묵객들은 주식을 마련하여 황국(黃菊)을 술잔에 띄워 마시며 시를 읊거나 그림을 그리며 하루를 즐겼다. 각 가정에서는 ‘국화전(菊花煎)’을 부쳐 먹는데 3월 3일에 진달래로 화전을 만드는 것과 같다.

 

. 출처: 중양절[重陽節] (두산백과)

 

4. 한국 세시퐁속사전에 나타나는 중양절(重陽節). 

중양절
[ 重陽節 ]

중구차례-충남 연기군 금남면 반곡리-국립민속박물관

분야계절날짜시절음식다른이름관련속담관련풍속

정일
가을(음력 9월)
음력 9월 9일
국화주(菊花酒), 국화전(菊花煎), 밤떡(栗?)
중구(重九), 국화절(菊花節), 귈, 산신의탄신일(山神-誕辰日), 상국일(賞菊日)
구월 군두 조금에 사돈네 빚 갚는다
성묘(省墓), 차례(茶禮), 등고(등산), 과거시험실시, 형(刑)을금함
 

정의
음력 9월 9일을 가리키는 날로 날짜와 달의 숫자가 같은 중일(重日) 명절(名節)의 하나. 중일 명절은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 같이 홀수 곧 양수(陽數)가 겹치는 날에만 해당하므로 이날들이 모두 중양(重陽)이지만 특히 9월 9일을 가리켜 중양이라고 하며 중구(重九)라고도 한다. 또 ‘귈’이라고 부르는 지방도 있다. 음력 삼월 삼짇날 강남에서 온 제비가 이때 다시 돌아간다고 한다. 가을 하늘 높이 떠나가는 철새를 보며 한해의 수확을 마무리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유래
중양절은 중국에서 유래한 명절로, 그곳에서도 매년 음력 9월 9일에 행하는 한족의 전통 절일이다. 중양절은 중국에서는 한나라 이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당송(唐宋) 대에는 추석보다 더 큰 명절로 지켜졌다.
등고회(登高會)는 중양절의 중요한 행사인데 이날 우산(牛山)에 올라 눈물을 흘렸다는 제나라 경공(景公)에 대한 기록을 근거로 중국에서는 이미 전국시대부터 행해졌다고 주장한다. 또한 내려오는 전설에 동한(東漢) 때 앞날을 잘 맞추는 비장방(費長房)이라는 도인(道人)이 어느 날 학생인 항경[恒景, 桓景]에게 “자네 집은 9월 9일에 큰 난리를 만나게 될 터이니 집으로 돌아가 집사람들과 함께 수유(茱萸)를 담은 배낭을 메고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면 재난을 면할 수 있네.”라고 하였다. 항경이 이날 그가 시킨 대로 가족을 데리고 산에 올라갔다가 집에 돌아오자 집에서 키우는 가축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고 한다. 중양절에 수유 주머니를 차고 국화주를 마시며 높은 산에 올라가는 등고 풍속은 이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유 주머니를 차는 것은 나쁜 기운을 제거하기 위해서이고, 국화주를 마시는 것은 노화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기능적인 해석도 있다.

내용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이래로 군신들의 연례 모임이 이날 행해졌으며, 특히 고려 때는 국가적인 향연이 벌어지기도 했다. 조선 세종 때에는 중삼 곧 3월 3일과 중구를 명절로 공인하고 중구를 무척 중요하게 여겨 늙은 대신들을 위한 잔치인 기로연(耆老宴)을 추석에서 중구로 옮겼으며, 또 중양절에 특별히 과거시험을 실시하여 이날을 기리기도 하였다.

중양절에는 여러 가지 행사가 벌어지는데, 국가에서는 고려 이래로 정조(正朝), 단오(端午), 추석(秋夕)과 함께 임금이 참석하는 제사를 올렸고, 사가(私家)에서도 제사를 지내거나 성묘(省墓)를 하였다. 또 양(陽)이 가득한 날이라고 하여 수유 주머니를 차고 국화주를 마시며 높은 산에 올라가 모자를 떨어뜨리는 등고의 풍속이 있었고 국화를 감상하는 상국(賞菊), 장수(長壽)에 좋다는 국화주를 마시거나 혹은 술잔에 국화를 띄우는 범국(泛菊) 또는 황화범주(黃花泛酒), 시를 짓고 술을 나누는 시주(詩酒)의 행사를 가졌다. 서울 사람들은 이날 남산과 북악에 올라가 음식을 먹으면서 재미있게 놀았다고 하는데, 이것도 등고하는 풍습을 따른 것이다.

중양절에는 이와 같이 제사, 성묘, 등고 또는 각종 모임이 있었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관리들에게 하루의 휴가를 허락하였다. 그래서 관리들이 자리에 없기도 하였지만 또한 명절이었으므로 이날은 형(刑) 집행을 금하는 금형(禁刑)의 날이기도 하였다.

한편 중양절은 농촌이 한창 바빠지는 때이기도 하다. 남자들은 그해 논농사를 결산하는 추수를 하고, 여자들은 마늘을 심거나 고구마를 수확한다. 퇴비만들기, 논물 빼기, 논 피사리 등은 남녀 공동작업이다. 지방에 따라서는 목화도 따야 하고, 또 콩, 팥, 조, 수수, 무, 배추 같은 밭작물의 파종과 수확이 겹친다. 그러므로 농촌에서는 중양절이라고 하여 특별한 행사를 벌이기보다는 평상 때와 똑같이 보내는 곳이 더 많다. 그러나 양수가 겹친 길일(吉日)이므로 여유가 있는 계층에서는 이날을 즐겼다. 등고 풍속이 그러하고 국화잎을 따서 찹쌀가루와 반죽하여 국화전을 만들어 먹는 것도 그 예가 된다.

추석 때 햇곡식으로 제사를 올리지 못한 집안에서는 뒤늦게 조상에게 천신(薦新)을 한다. 떡을 하고 집안의 으뜸신인 성주신에게 밥을 올려 차례를 지내는 곳도 있다. 전남 고흥의 한 지역에서는 이때 시제(時祭)를 지내는데, 이를 ‘귈제’라고 한다.

과거에는 각 마을마다 또는 두세 개 마을에 한 명씩 동네 단골무당이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연말에 이장에게 이세(里稅)를 내듯이 중양절이 되면 이들에게 시주를 하는데, 이것을 하지 않으면 다음에 탈이 있을 때 단골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중국 당나라에서는 중양절이 되면 나라에서 태학(太學)의 학생들에게 겨울옷을 하사하는 의식이 있었다. 중양절 무렵이 겨울을 준비하는 적절한 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중구절의 국화술은 중국의 시인인 도연명(陶淵明)과도 관련이 있다. 그가 이날 국화밭에 무료하게 앉아 있는데 흰옷을 정갈하게 입은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도연명의 친구가 보낸 술을 가지고 온 것이다. 연명은 국화꽃과 함께 온종일 취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려 말의 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도 중양절에 술을 마시며 도연명의 운치를 깨달았는지 “우연히 울 밑의 국화를 대하니 낯이 붉어지네. 진짜 국화가 가짜 연명을 쏘아보는구나.”라는 글귀를 남겼다. 두목(杜牧)이 남긴 취미(翠微)의 시구에도 이날 좋은 안주와 술을 마련해놓고 친구들을 불러서 실솔시(??詩)를 노래하고 무황계(無荒戒)를 익혔다고 한다.

의례
『고려사(高麗史)』에는 이날 중구연(重九宴) 또는 중양연(重陽宴)을 열었다는 기사가 있다. 국가가 규례를 정하여 내외의 신하들과 송나라, 탐라(耽羅), 흑수(黑水)의 외객들까지 축하연에 초대하였다. 조선에 들어와서도 임금이 사신(使臣)들에게 특별히 주연을 베풀었다. 또 탁주(濁酒)와 풍악을 기로(耆老)와 재추(宰樞)에게 내리고 보제원(普濟院)에 모여서 연회하게 하였다.

선조(宣祖) 때 예조에서 제향 절차에 대해 아뢰면서 중양이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는 속절(俗節)로 열거되어 있지 않지만, 이날 시식(時食)으로써 천신하는 것이 고례(古禮)이므로 속절에 해당하는 제사가 행해져야 한다고 하였다.

이언적(李彦迪)은 『봉선잡의(奉先雜儀)』에서 정조, 한식, 단오, 중추와 함께 중양을 속절로 여겨 아침 일찍 사당에 들러 천식(薦食)하고 이어 묘 앞에서 전배(奠拜)한다고 하였다. 이문건(李文楗)의 『묵재일기(?齋日記)』를 보면 조선 중기까지 사가(私家)에서는 중양절은 등고 외에 간혹 간단한 천주과지례(薦酒果之禮) 곧 천신례가 있을 뿐 묘제를 행하는 한식에 비하면 속절로서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후기에 들어와 삼짇날과 중양일이 함께 또는 둘 중의 하나가 원래 중월(仲月)에 복일(卜日)하여 행하던 사시제(四時祭)의 한 축으로 설정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조선 전기까지는 시제(時祭)보다 기제(忌祭)를 중요하게 여기다가 중엽에 이르러 사대부들이 시제를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는데, 일년 4회의 시제가 부담되었으므로 이를 춘추(春秋) 2회로 줄여 봄에는 삼짇날에, 가을에는 중양절에 지내는 자가 많아졌다고 하였다.

중양절의 시제는 조선 후기 이후 특히 영남지방에서 부조묘(不?廟)를 모신 집안들을 중심으로 행해져 왔다. 유교 제례에서는 사대봉사(四代奉祀)라고 하여 4대가 지나면 사당에 모시던 신주를 묘에 묻게 되어 있으며, 나라에서 부조(不?), 즉 묘를 옮기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이 있어야 사당에 신주를 두고 계속 기제사로 모실 수 있다. 이 부조가 인정된 조상에 대한 시제는 각별히 중일을 택하여 삼월 삼짇날이나 구월 중양절에 제사를 지내는데, 특히 중양 때가 되어야 햇곡을 마련할 수 있었으므로 첫 수확물을 조상에게 드린다는 의미도 지닌다. 영남지방에는 중양절에 불천위제사를 지내거나 성묘를 하는 집안들이 간혹 있지만 날이 갈수록 더 귀해지고 있다.

절식
중양절은 국화가 만발할 때이므로 국화주, 국화전을 만들어 먹는다. 국화주는 꽃을 따서 술 한 말에 꽃 두 되 꼴로 베주머니에 넣어 술독에 담아 뚜껑을 덮어둔다. 약주에 국화꽃을 띄워 국화주를 즐길 수도 있다. 화전, 화채, 술에 모두 쓰이는 국화는 재래종인 감국(甘鞠)이어야 향기도 좋고 오랫동안 싱싱하다.

국화전은 노란 국화꽃잎을 따서 국화 찹쌀떡을 만드는데, 그 방법은 삼월 삼짇날의 진달래떡을 만드는 방법과 같으며, 이름도 화전(花煎)이라고 한다. 봄의 진달래 화전은 율무를 많이 쓰는 반면 가을의 국화전은 찹쌀가루를 많이 쓴다. 중국 양나라 사람 오균(吳均)이 지은 『서경잡기(西京雜記)』에 “한나라 무제(武帝) 때 궁녀 가패란(賈佩蘭)이 9일에 이(餌) 떡을 먹었다.”라고 했는데, 이(餌)란 경단[?]을 말하는 것이다. 송나라 사람 맹원로(孟元老)의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는 “도시 사람들이 중구(重九)에 가루로 떡을 쪄서 서로 선물한다.”라고 했다. 잘게 썬 배와 유자(柚子)와 석류(石榴)와 잣 등을 꿀물에 탄 것을 화채(花菜)라고 하는데, 이것들도 모두 중양절 음식으로 제사에 쓴다.

의의
추석이 햇곡으로 제사 지내기 이른 계절이 되어감에 따라 추수가 마무리되는 중양절에 중구차례를 지내는 등 논농사의 발전에 따라 조상을 위하는 날의 의미를 더해갔다. 조선시대에 이날 기로연을 베풀었다는 사실은 장수에 좋다는 국화주를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에서는 물론 민간에서도 이날을 경로(敬老)의 날로 인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출처:중양절[重陽節] (한국세시풍속사전)

 

4]. 중국의 중양절(重陽節). 

 

1. 베이징 관광국에 나탄는 중국의 중양절.

 

http://www.visitbeijing.or.kr/detail.php?number=699

 

2.  중국의 창에 나타나는 중양절. 2016-10-03 보도기사

 

….또 국경절 연휴 후 곧 맞이하게 될 노인절인 중양절의 영향을 받아 60세 이상의 노인 관광객도 대폭 늘어나고 있습니다. 많은 가정은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하고 있습니다. 상해 디즈니, 광주 장륭(長隆) 풍경구, 주해 장륭 해양세계 등 코스의 인기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도우관광사이트” 대외연락부 왕밀(王蜜) 여사의 소개에 따르면 서북과 서남의 가을철 관광도 국내 관광의 큰 특점으로 되고 있습니다…

 

http://korean.cri.cn/1620/2016/10/03/1s240715.htm

 

[3]. 불교는 하느님.창조신에 대항하는 무신론적 Monkey입니다. 실제로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대항하여 부처 Monkey가 만든 불교는 그 발상지 인도에서도 불가촉천민계급입니다. 오래 겪어보면 인간이나 침팬치과의 불교 Monkey가 하느님이나 창조신을 이길수는 없습니다.

 

1]. 침팬치과의 Monkey부처는 인도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브라만계급 다음의 세속 신분으로,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고 옆길로 빠졌는데, 불교발상지 인도는 다시 불교를 배격하고 힌두교(브라만숭배)를 믿는 나라입니다. 왕의 칭호도 얻지 못한 배척받는 네팔출신 왕자태생이며, 인도는 불교신자를 가장 밑의 천민계급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불교Monkey 일본 항복후 미군정령인 조선성명복구령을 발효, 전국민이 조선 국교인 유교의 한문성명과 본관을 의무등록하게 하여, 해방이후 한국인은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에 빠져, 세계사의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하여, 필자는 국사(성균관, 해방후의 성균관대)와 세계사(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귀족사제 이나시오의 예수회 산하 서강대.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를 병합하여 한국의 Royal.Imperial대학을 유지해왔으며 앞으로도 不變사항입니다. 패전국 일본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원래 을사조약이 무효(국내법 우선시 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고, 2차대전 패전국으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그 때부터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은 없어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으로도 한국에 주권이 없고, 1988년에 발효된 현행헌법으로 보면 임시정부 조항(을사조약.한일합방 무효, 대일선전포고)에 의해 선전포고한 적국의 잔재로, 주권.자격.학벌없는 패전국 奴隸.賤民대학이기도 합니다. 교과서나 국내법.국제법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데, 적산재산 국유화처럼 국립 서울대로 변신해, 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 및 사설 입시지등에서 그 뒤의 奴卑.下人카르텔을 형성해 최고대학 성균관대에 항거해오고 있습니다. 

 

2]. 인도가 그렇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국도 조선시대에 조계종 승려(산속에 머물러야 하고, 시중에 나오면 않되며 혼자 살아야 함. 5,000만 유교성명 한국인 뒤의 존재들임)를 천민으로 만들어서, 필자는 그 역사적 사실을 어쩔 수 없습니다. 한국에 주권없는 일본 승려는 일본습속대로 결혼도 하고 절도 사고 팔고, 시중에 불교마크 달고 진출해 있습니다.

 

3]. 다음은 인도의 오랜 불가촉 천민인 불교신자들에 대한 기사입니다. 물론 그후의 이슬람.기독교도 신분은 높지 않습니다만, 불교신자는 오랫동안 천민계급이 인도입니다. 출처는 불교평론 2002년 3월 10일. 기사작성자:이지은. 

 

– 다 음 –

 

….인도는 비록 불교의 발상지이며 고대에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었으나, 마지막 불교 왕조인 굽타 왕조의 몰락과 힌두교의 재기, 뒤를 이은 이슬람 교도들의 침입으로 불교는 탄생의 땅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라는 두 종교의 ‘불교 죽이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때 불교로의 개종에 크게 동참하며 개종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 ‘달리뜨’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의 카스트 신분제도 중 가장 미천하다고 하는 ‘수드라’ 계급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제5의 신분으로 그림자에만 닿아도 더러워진다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이다…

 

…인도에서는 지난해 11월에 약 10만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수도인 뉴델리에서 불교로의 개종행사가 열렸고, 그 이후로도 주변의 우따르 쁘라데쉬 주와 비하르 주의 여러 마을에서 수백, 수천 명 규모의 개종식이 조용히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나타나는 인도인들, 특히 기존 힌두교도들의 불교로의 개종은 이와 같이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집단성’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여러 명이 모여서 개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카스트 또는 몇몇 카스트 집단의 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개종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개종을 결정하는 방식은 자기 카스트 내에서 나름대로 발언권이 있는 구성원의 건의로 마을 단위의 카스트 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개종을 결정한다. 그러한 절차를 거치다 보니, A마을의 X카스트가 개종을 한다면 원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X카스트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앞으로 X카스트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불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종에 동참하는 카스트는 거의 예외 없이 달리뜨에 속하는 카스트, 과거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인도의 전통과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개종’이란 과거나 권위와의 절연을 의미하며 이를 결심하고 감행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한 앞서 살펴본 신분제와 신분제의 타파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지대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이는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부터 일어나고 있는 하층민들의 기독교, 이슬람교로의 개종 또는 힌두교 개혁종파의 창시 등도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북인도 지방에서의 불교 개종 움직임도 역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면에서 최근의 개종운동은 1956년 이래 마하라슈트라를 휩쓸었던 암베드까르 이후의 개종운동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에 비하여 불교는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악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이는 과거의 카스트 제도나 온갖 불평등과 절연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었다. 또한 그러면서도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인도의 종교였고, 더구나 고대 인도의 ‘황금기’에 널리 퍼져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했던 종교이기도 했다. 암베드까르는 독특한 인도사 해석을 통하여 빛나는 불교의 전통을 달리뜨들과 연결시켰다.1)

 

그는 불가촉천민제의 기원을 4세기경 불교와 브라만교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던 당시, 끝까지 불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일부 부족민들에 두고 있다. 브라만들은 불교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사제의 권위로 더러운 직업을 강제적으로 부과하고 사회와 격리시켰다. 훗날 승려와 사찰이 점차 사라지고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면서 이들도 힌두교화했지만 이미 대대로 이어지던 더러운 직업 때문에 이들은 불가촉천민으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암베드까르의 주장은 학술적으로 타당하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지만,2) 불교도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믿음으로 자리잡아 그들이 조상들의 종교를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로 믿어진다.

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681

 

4]. 중앙일보 2020.09,17 서 유진 기자 보도뉴스.

 

… “힌두교 불가촉천민들이 불교도로 개종을 많이 하다 보니 최근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강제로 불교도를 힌두교로 “재개종”시키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중앙일보] “개도 먹는 우물물, 왜 못먹나” 인도 힌두교 천민들 개종 붐

 

5]. 현대불교 2013.02.15. 우명주 박사(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이것은 단지 그 사람만의 의견이 아니라 많은 힌두교 신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신불교를 힌두교와 구별되는 새로운 종교로 인식시키기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가촉천민을 무시하던 시선을 그대로 불교에 투영해 신불교를 천한 불가촉천민들이 믿는 천한 종교로 바라보기도 한다. 또한 불교도라는 것이 곧 불가촉천민 출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http://www.hyunbulnews.com)

 

6]. 일본은 인도와 달리 동남아 패전국.약소국들인 태국,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처럼 불교국입니다.

 

일본 강점기로 대중언론에서 최근 유교가 도전받고 있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일본 불교), 기독교의 주권이 없는 법리적 측면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3].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로, 6백년 넘는 역사를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 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두 대학만 일류.명문대임. 해방후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등록이 의무인,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나라 한국. 5,000만 한국인뒤 주권없는 패전국 불교 Monkey 일본의 성씨없는 점쇠 僧(일본에서는 천황). 그뒤 한국에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점쇠가 세운 마당쇠 僧대학). 그 뒤 서울대에 대중언론에서 눌려온 새로생긴 일제강점기 초급대 출신대나 기타의 비신분제 대학들.@한국에 무종교인은 없습니다. 해방후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등록이 의무인,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나라 한국

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주권없음. 강점기에 피어난 신흥종교인 원불교등도 주권없음. 그러나 세계사로 보면, 가톨릭이라는 세계종교는 너무 세계인에 일반화되어서, 국사적개념과 병립하여, 세계사적 개념으로,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에서, 국제관습법상 세계종교 가톨릭의 자격으로 예우하는게 적절함. 일본식 개념으로, 일본 국지신앙인 일본 신도(일본의 국교), 불교, 기독교의 위상을, 한국에 적용할수는 없음. 

그리고 한국과 바티칸시티는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기 때문에, 한국헌법 임시정부가 선전포고하고,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일본의 종교기준을 적용하는게 맞지않음. 불교는 인도에서도 배척당해왔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라, 불교국 일본의 종교기준대로 하면,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아닌 사회규범이 되어, 일본 신도(불교에서 파생됨), 불교, 기독교만 포교종교고, 유교는 일제강점기의 신생종교인 원불교보다 신자수가 적은 50만(성균관.향교의 제사인구만 유교도라고 1980년대 초반에 통계청 표본조사를 실시하여, 다시 유교에 도전하고 있음)이 되어, 해방한국의 종교주권을 침해당하게 됨.

그래서,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가톨릭의 교과서.학술적 자격이 있는 세계사와 한국사, 국민윤리(유교나 기독교등의 세계종교를 교육)등의 종교자격을 적용할 수 밖에 없음. 근대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학자들의 이론으로 이루어진 학교교육의 모든 교과목들임. 중국(황하문명, 세계 4대발명품인 종이,화약,나침판, 인쇄술의 중국 발명품이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임)이나 유교, 중국의 대학제도(한나라 태학, 위나라 태학, 이후의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에 계승된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는 분명 세계사의 가장 큰 혜택을 보아온 세계적 자격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 


그리고 한국과 바티칸시티는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기 때문에, 한국헌법 임시정부가 선전포고하고,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일본의 종교기준을 적용하는게 맞지않음. 불교는 인도에서도 배척당해왔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라, 불교국 일본의 종교기준대로 하면,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아닌 사회규범이 되어, 일본 신도(불교에서 파생됨), 불교, 기독교만 포교종교고, 유교는 일제강점기의 신생종교인 원불교보다 신자수가 적은 50만(성균관.향교의 제사인구만 유교도라고 1980년대 초반에 통계청 표본조사를 실시하여, 다시 유교에 도전하고 있음)이 되어, 해방한국의 종교주권을 침해당하게 됨.

그래서,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 가톨릭의 교과서.학술적 자격이 있는 세계사와 한국사, 국민윤리(유교나 기독교등의 세계종교를 교육)등의 종교자격을 적용할 수 밖에 없음. 근대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학자들의 이론으로 이루어진 학교교육의 모든 교과목들임. 중국(황하문명, 세계 4대발명품인 종이,화약,나침판, 인쇄술의 중국 발명품이 세계사의 세계 4대 발명품임)이나 유교, 중국의 대학제도(한나라 태학, 위나라 태학, 이후의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에 계승된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는 분명 세계사의 가장 큰 혜택을 보아온 세계적 자격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 @문화대혁명으로 모택동 주석도 비판받고,중국은 개혁.개방정책으로, 유교 전통명절인 춘절, 중추절, 청명절, 단오절의 4대명절 공휴일을 아주 길게 하였음.@.@한국에 무종교인은 없습니다.5,000만 모두가 유교국 조선의 한문성명.본관 가지고, 유교교육 받고, 설날,추석.대보름,한식,단오 및 각종 명절, 24절기,문중제사.가족제사!



[4]. 필자의 당부사항.

 

필자가 중국의 문화대혁명 이후 유교의 침체기에 수천년 유교를 제도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세계사의 황하문명.유교,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을 원용하였는데, 이는 관습법상 인정되는 역사적 제도입니다. 서유럽의 교황제도나 볼로냐.파리대학등도 관습법으로는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는 역사며 전통입니다. 필자는 유교와 중국의 대학제도, 찬란한 역사, 동아시아 유교국들의 유교를 이어가기 위하여 세계사를 반영하여 왔습니다. 교황윤허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윤허 대학중 하나)도 성균관대와 함께 한국의 Royal대며, 최근 십년 넘게 정신적인(법으로는 아직 아님) 궁 성균관대 임금(성황폐하), 가칭 御어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제도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두 임금의 자격은 새로 생길 황후나 왕비에 비해 초월적 군주의 위치며 여자이기 때문에 어떠한 권력이나 통치권을 주지는 않겠습니다(수렴청정도 반대함). 그리고 두 대학의 임금은 남자로만 이어져야 합니다. 

 

성황이나 어서강대 임금은 공석이 되어도 미래까지 지속적으로 계승되는 제도로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하고 법으로 군주정이 실현되면 궁 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의 지침을 반영하여 별도의 법을 제정해 입헌군주국의 제도로 실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성황제도.어서강대 임금제도를 실현시키기 전에는 한국 최고(最古,最高) 대학 성균관대의 Royal대 자격은 국내법과 국제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사 교과서의 강행법 자격으로 보호받고, 서강대의 Royal대 자격은 세계사의 교황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관습법 측면에서만 머물러야 합니다.

 

대학과 유교교육의 구심점은 성균관대, 한국 종교의 구심점은 황사손(이 원).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Royal 성균관대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임.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균관대 다음 Royal대 예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http://blog.daum.net/macmaca/2575

 

. 필자의견: 차후 황사손(이 원)의 자손들이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방계 후손중, 황사손의 지정에 따라, 황사손의 자격을 얻게되는 후손이 생겨날 것입니다. 황사손의 자손이나 방계 후손이 성균관대에 입학하고 4년 공부하여 졸업한 뒤, 황사손으로 지정되면, 그 후손을 성황(폐하)로 추대하시기 바랍니다. 성황폐하가 법으로 확정되면, 황사손의 자손들이 의무적으로 성균관대를 입학하여 4년동안 다닌후, 졸업하게 제도를 만들고, 황사손으로 지정된 후계자는 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의 제사장 권한과 아울러, 성황폐하의 자격으로 성균관의 석전대제(선성이시며, 성인임금이신 공자님에 대한 제사인 석전대제의 초헌관)를 주재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경연등도 부활하면 좋겠습니다.   

 

입헌군주국 형태의 군주정을 펼치려면, 위 내용을 근거로 Royal대로 국내와 세계에 알려온 궁(宮) 성균관대 임금을 성황 폐하로 하고, 어(御) 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을 자치왕국의 수장(통치영역은 서강대 학내의 명예직으로 함)으로 하여야 하겠습니다. 황사손에게는 아직까지 자칭.타칭 임금자격이 없습니다. 반드시 성대 입학.졸업자만 성황이 되어야 합니다. 성황폐하가 국가의 임금으로 옹립되면, 유교를 국교로 복구하고(어서강대의 학내 종교주권은 인정하고 주권없는 일제강점기 잔재종교는 종교의 자유는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 및 국가원수로서, 최고제사장의 권한 및, 軍 통수권과 외교권, 총리 및 각료임명권등을 가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유교 경전상의 중국 天子의 지위는 결코 사용할 수 없으며, 한국만의 황상폐하로 하면서, 외국의 Great King(King of Kings)으로 번역되는 수준으로 한정하겠습니다. 현대세계는 황제칭호를 가진 나라가 없고, 한국의 전통 역사가 그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마지못해 황제칭호를 가지게 된 사정을 참작하여, 한국내의 황상폐하 칭호로 한정하겠습니다.

 

성황(성황폐하, 宮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와 어서강대 임금(서왕전하)의 사후에도 정신적인 성황과 어서강대 임금의 자격은 누군가에게 계승시켜, 차후의 황정복구에 대비해야 합니다.

 

서강대 임금은 서강대에 맡겨놓으면 적절합니다.   

 

유교의 최고 제사장으로는, 황사손(이 원)이 가장 준비가 충분하므로, 독신에 후사가 없는 필자(성황)는 당대에 성황(법률상은 아니지만, 자천하여 등극한 상징적 성왕 폐하)으로 살아갈것입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의회와 법원의 견제를 가지는 입헌군주국으로 하면서, 탄핵대상이 아니라는 점도(다만, 정당방위 아닌 살인을 저지를 경우, 의무적으로 스스로 하야하여야 합니다) 법률로 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역성혁명은 원칙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며, 법률위반의 정도가 심해 의회에서 투표를 거쳐 이의제기를 하면,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를 거쳐, 반드시 직무정지를 시키고, 새로운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결의하면, 의회에서 승인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중차대한 범법자가 발생하는 경우, 새로운 황상폐하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에 의해, 선출하도록 하고, 의회는 거부권 없이 승인해주는 절차를 거쳐야 하겠습니다. 성황폐하와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남자에 한정합니다. 황제가 없는 현대에, 한국이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한皇國(대한제국 아님) 황상(皇上)폐하로 하고 황제칭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왕들을 皇上폐하로 추존하지도 말아야 합니다.또한 성균관대 입학후 4년 공부후 졸업자만 成皇폐하로 하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추대로 성균관대 이외의 졸업자를 황상폐하로 추대하면, 무효로 하고, 그 즉시 대한황국 성황폐하로 제도를 변경하여야 합니다. 황상폐하 추대위와 성황폐하(성균관대 졸업자로 구성된 여러 성씨의 복합단체) 추대위는 다른 기구로 존재하여야 합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가 國皇으로 존재해도, 군통수권은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통수할 수 있도록 사전에 법제도를 정비하여야 합니다.국방상과 합참의장.육군 참모총장,경찰총수는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임명하고, 성황폐하 추대위 출신의 추천을 받은 성균관대 출신만 임명하여야 하겠습니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황상폐하를 성균관대 출신이 아닌 타대출신으로 옹립하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결정으로, 그 즉시 역성혁명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출신이 아닌 새로운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가급적 추대하지 않되, 위의 사례처럼 성황폐하의 지위를 무력화시키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합의로, 타성출신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하십시오. 이는 미래의 황정에 대비한 가상 시나리오 성격이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나 한국 유교전통의 해방후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에도 이어지는 행태등(수천년 유교문화 전통이라, 국가나 집권정부 차원에서 제재하지 않는한 끊임없이 이어지는게 전통문화들임)에 대해 자료인용을 하면서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127

 

2.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blog.daum.net/macmaca/2560

 

3.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

http://blog.daum.net/macmaca/2967

 

4.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

http://blog.daum.net/macmaca/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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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

http://blog.daum.net/macmaca/2803

 

6.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일본의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

http://blog.daum.net/macmaca/3044

 

7. 한국인은 행정법.관습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179

 

8.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http://blog.daum.net/macmaca/3057

 

 

9.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http://blog.daum.net/macmaca/2632
 

10.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blog.daum.net/macmaca/2596 

 

11. 한국에서는 Royal대인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 세계사를 반영시 관습법적으로 교황 윤허 Royal 서강대도 성대 다음 Royal대로 두 대학이 가장 학벌이 높고 좋음. 서울대는 한국에 주권이나 학벌같은 건 없음. 단지 마음대로 등록하던 여러 신문에 남아있던, 친일부왜배들이 성균관대에 도전하면서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나라에서 일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주권없고 학벌없는 대학임은 변치 않음. http://blog.daum.net/macmaca/2260 

12. 유교의 내세관(來世觀)과 기복신앙(祈福信仰) 측면에 대한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800 

 

13. 유교국가의 전통적 특징중 하나는 호적(戶籍)제도였음. 한국과 중국의 호적제도에 관하여! http://blog.daum.net/macmaca/2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