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이다. 나는 곧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나는 올해 16살 여학생이다.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 글을 읽을 독자들의 반응부터 걱정하게 된다.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내 탓이라고 나에게 뭐라고 하진 않을까?” 따위의 생각들 말이다. 오랫동안 날 아프게 하고 앞으로도 괴롭게 할 디지털 성범죄는 내가 15살이 되고 사춘기와 우울증이 찾아오면서 시작되었다. 나는 한창 유행 중이던 코로나의 걸려 집에 혼자 고립되어 있을 때였다. 친구들은 모두 학교에 있었고 나의 심심함을 달래줄 것은 스마트폰뿐이었다. 그날따라 큰 외로움을 느꼈고 나와 대화를 나눠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나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 생각이 나서 그곳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어떤 남성과 1:1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는 나와 여러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가슴 사진을 요구했다. 이야기하는 동안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나의 말을 잘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었기에 경계하지 않았다. 나는 너무 어리석었고 미숙했다. 나는 그에게 순순히 가슴 사진을 보냈고 돌아온 것은 달콤한 칭찬과 더 큰 요구였다. 집에 박힌 날이 길어지며 나의 우울증은 더욱 커져만 갔고 이는 자존감의 문제와 직결됐다. 항상 외모적으로 못났다고 생각한 나에게 너무 이쁘다고, 매력적이라고 찬양 급의 칭찬들은 너무 달콤했다. 그다음 이어진 더 큰 요구들에도 난 칭찬의 달콤함을 맛보기 위해 그에게 더 자극적인 사진들과 영상을 보냈다. 그는 더욱 큰 반응을 보내며 내게 찬양하는 칭찬을 했다. 그때 당시엔 기분이 좋았다. 왠지 모르게 뭔가 우쭐해졌고 사랑받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우울한 감정만 있던 내 마음속에서 기쁨이 느껴졌다. 나는 이 감정을 계속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트위터라는 앱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그 앱에서 계정을 만들어 “일탈계”를 시작했다. 거기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체 사진을 올리고 있었고 내 또래 같아 보이는 이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게시자의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나도 관심을 받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사진과 영상을 올리고 있었고 나 하나 올려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거라고 생각 들 지 않았다. 모두가 그러고 있으니 나도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미 이런 생각이 든 순간부터 글러먹은 것이었다. 정신과 약을 꾸준히 먹고 심리 치료를 이어오면서 슬슬 정신적 안정을 되찾아갔을 때 과거 일에 대한 후회와 불안만 남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말할 수 없는 이러한 일에 성범죄 강사로 활동 중이던 한 강사분께 연락을 넣어 처음 세상 밖에 나의 아픔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분께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그때 나의 상태를 “전두엽이 마비가 된 거 같았어요. 정확한 사고가 안 됐고 나 자신이 내가 아닌 느낌이 들었어요”라고 설명했다. 정신적 안정을 찾기 전 난 계속해서 트위터에서 내 몸 사진과 영상을 올렸고 개인 메시지로는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연락이 왔다. 그들은 모두 내게 사진과 영상을 더 보낼 것을 요구했고 나는 모두 그에 응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 상황을 되돌릴 수 없다. 어떤 이는 텔레그램에 내 신상을 박제했다며 협박을 했다. 나는 너무 두려웠고 인터넷에서 이러한 상황을 겪은 이들을 찾아 조언을 구했다. 알아보니 그것은 “n 번 방”의 수법 중 하나였다. 피해자에게 자신이 텔레그램에 신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고 피해자가 그 앱에 접속하게 끔 끌려들어 앱에 접속하는 즉시 피해자의 폰을 해킹에 신상정보를 알아낸 다음 지인들에게 유포하겠다 협박하며 성착취를 이어가는 형식이다. 나 또한 n 번 방의 피해자 중 한 명이 될 뻔했다. 다행히 조언을 준 사람들 덕분에 피할 수 있었다. 그때 내가 그 수법에 넘어가 버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정말 아찔하다. 다른 많은 이들은 내가 자신들의 “성노예”가 될 것을 요구했다. 자신들의 라인 아이디를 주며 노예 생각이 있으면 연락을 해라. 용돈을 주겠다며 나를 꼬셨다. 또 어떤 이는 용돈을 주겠다며 자신과 영상 통화를 요구했다. 나는 또 멍청하게 혹해서 영상 통화를 감행했다. 그러나 역시 그 또한 사기였다. 나는 마음이 공허하고 외로울 때마다 이 짓을 했다. 이것이 믿기지 않는 내 지난 1년간의 일들이다. 사실 이것 말고도 감히 말하기 어려운 더러운 일들이 더 있다. 지금 나로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내가 했다고는 전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늦었다.이 일이 있고 나의 삶은 처참히 망가졌다. 지독한 후회와 불안, 상처뿐이었다. 난 나 자신을 크게 탓했다. 아무리 정신적으로 불안정했어도 나 스스로 몸을 유포했다는 것이 굉장히 불건전하고 나 자신이 역겹게 느껴졌다. 죽을 만큼 힘들었다. 혹시나 내 사진과 영상이 불법 사이트에 돌고 있지 않을까. 내 지인들이 보진 않을까. 미치도록 불안했다. 부모님껜 너무 죄스러워 한 동안 얼굴도 마주치기 힘들었다. 이 일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날 뭐라고 생각할까. 분명 손가락질하며 날 쓰레기 취급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루하루 불안했다. 하루가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이 죽을 만큼 미웠다. 자살도 여러 차례 시도했다. 죽으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반에 앉아있으면 내가 역겨운 괴물이 된 거 같았다. 반 친구들이 즐겁게 웃고 떠들 때 순수하게 노는 그 모습이 난 너무 고통스러웠다. 나만 더러운 인간이 된 느낌이었다. 내가 죽을 때까지 그 영상과 사진은 유포되고 있을 걸 생각하니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래서 성교육 강사분께 용기를 내 상담을 신청했다. 그리고 얼마 후 전화 상담이 이어졌다.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 사람이 내 이야기를 이해해 줄까?” 나는 통화하는 내내 펑펑 울었다. 강사분은 차분히 날 다독여주셨다. 나를 이해해 주셨다. 항상 내 탓이라고 후회만 하던 나에게 그런 식으로 성범죄를 유도한 가해자들이 잘못한 거라고 내 잘못은 없다고 말해주었다. 상담을 마친 후 난 잠시 마음을 놓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불현듯 고통은 찾아왔다. 그 디지털 성범죄 사건은 나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성인 남성들만 보면 두렵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주말만 되면 불법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내 영상이 떠돌아다니지 않을까 매번 확인한다. 불법 사이트와 트위터에서 거래되는 다른 피해자들의 영상들을 접하면 나도 이들처럼 어디선가 내 영상이 유포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너무 두려웠다. 또다시 내 정신은 피폐해져 갔다. 그리고 다시금 큰 용기를 내어 이번엔 전문기관인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센터에 연락을 했다. 나는 처음 상담을 받았을 때 보다 더 많이 울었던 거 같다. 정말 머리가 아플 정도로 울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는 더 깊어져갔다. 상담을 진행하는 동안 정말 많은 청소년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담가분은 더 이상 불법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며 영상을 찾지 말고 편히 살라고 말씀하셨다. 영상을 지운다고 해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고, 그냥 잊으라고 하셨다. 가슴이 미워졌다. 맞는 말이었다. 내 영상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심화되어 가고 있는데 그에 대응할 기술과 정부의 정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전문기관도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응원의 말 뿐이었다. 나는 다시금 불안해졌다. 내가 믿고 나를 보호해 줄 나라의 지원과 법과 기술의 한계점을 느끼고 더욱 불안해졌다. 디지털 성범죄의 가해자들은 나라의 법을 한참 능가하고 있었다. 내게 남은 것은 허무뿐이었다. 앞으로 더 이상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한 동안은 “그냥 내가 벌을 받는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나라에서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 아직도 너무 두렵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유포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의 주변 반응들도 무시할 순 없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이도 있지만 애초에 최초 유포자는 나라며 손가락질할 사람들의 시선이 무섭다. 나는 지금도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 상담을 받은 후 전보다는 상태가 나아진 것은 맞지만 트라우마는 불현듯 나타난다.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4일간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만큼 매 순간 불안하고 힘들다. 그저 나 같은 청소년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난 아직도 날 용서하지 못했다. 1년이 훨씬 넘게 지났지만 난 아직도 날 미워한다. 그러나 다른 피해자분들에게는 말해주고 싶다.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가해자의 잘못이라고 당신을 그만 용서해 달라고”이것은 자신에 대한 외침이기도 하다. 그만 날 용서하고 싶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 살고 싶다. 숨을 쉬고 싶다. 나의 디지털 성폭력의 아픔은 앞으로도 나와 함께 할 것이다. 이 글을 마치며 내가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 범죄의 심각성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나라는 그에 맞는 법과 제도를 마련해 주면 좋겠다. 난 무식하고 어리석고 또한 그러한 성범죄를 겪기엔 너무나도 어렸다. 난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끝나지 않을 불안의 고통을 말이다. 만약 주변에 나 같은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가 있다면 그 사람을 너무 매도하지 말고 그저 괜찮다는 위로를 권할 것을 부탁드리고 싶다. 글을 마치며 이 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 뜰게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